힐러리 클린턴(Hillary Clinton)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프로필은?힐러리 클린턴(Hillary Clinton)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프로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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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25 / 힐러리 클린턴(Hillary Clinton)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프로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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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시각 2016년 7월 25일부터 나흘간

펜실베이니아에서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려

마지막 날인 28일, 퍼스트레이디, 연방 상원의원, 국무장관을 지낸

힐러리 클린턴을 제45대 대통령 선거에 나설 후보로 선출하게 됩니다.

 

독립 선언문을 채택하고, 헌법을 만든 펜실베이니아에서

미국 역사상 첫 여성 대통령을 향한 발걸음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미국 민주당은 이번 전당대회에서

함께 더 강하게(Stronger together)라는 슬로건 아래

함께 단합하자(United togegher), 함께 일하자(Working together)를 주제로

버락 오바마, 빌 클린턴, 버니 샌더스 등 스타급 연사들이 총 출동해

힐린턴 클린턴 미국 대선 후보에 대한 지지를 호소할 예정입니다.

 

 

힐러리 로뎀 클린턴(Hillary Rodham Clinton)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시카고 근교에서 작은 섬유업계 사장을 하던

영국 웨일즈 혈통의 휴 앨즈워스 로댐(Hugh Ellsworth Rodham)과

전업주부인 도로시 하월 로댐(Dorothy Emma Howell) 사이에서

1947년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3남매 중 장녀로 태어나 올해 나이는 69세입니다.

 

기독교를 믿는 보수적 성향의 가정에서 성장했고,

아버지는 힐러리가 전 과목 A학점을 받아왔을 때에도

"네가 실력 없는 학교에 다니기 때문"이라고 했을 정도로 칭찬에 인색했다고 하며,

 

고등학교를 다디던 16살 때에는 공과당 대통령 후보였던

베리 골드워터(Barry Morris Goldwater)의 선거캠프에서 활동하고,

미국에서 명문여대로 알려진 웰즐리 대학(Wellesley College)에 진학한 후에는

공화주의자 클럽 동아리를 이끌기도 했지만,

 

1960년대 말부터 미국에 불기 시작한 민권운동과

1968년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암살 사건, 베트남 전쟁 등의 영향으로

민주당원으로 정치적 성향을 바꾼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힐러리 클린턴(Hillary Clinton) 후보는 1969년 예일대 로스쿨에 진학한 후,

자신보다 한 살 많은 아칸소 주 출신의 법학도이자

지금의 남편인 빌 클린턴(Bill Clinton)을 만나 1975년 10월 결혼하게 되고,

 

남편 빌 클린턴이 1976년 아칸소주 법무장관을 거쳐

1978년 아칸소주 주지사에 당선되던 때에는

로즈 법률법인 변호사로 일하며 능력을 인정받았고,

 

1987년부터 1991년까지 미국 변호사협회 여성회원 회장을 지내며

내셔널 로 저널(The National Law Journal)에서 뽑은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변호사 100인에 선출되고도 했고,

 

빌 클린턴이 1992년 제42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자

선거 운동에 열정적으로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빌 클린턴은 힐러리 클린턴이 자신보다 똑똑하다는 소문을 의식해

자신을 찍으면 하나 가격에 둘을 사는 셈이라고 말하며

빌러리(빌 + 힐러리)라는 말을 유행시키기도 했고,

 

특히, 이후에 과 힐러리의 주유소 대화가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대통령 재임 시절에 빌과 힐러리가 어는 날 드라이브를 하다 들른 주유소에서

주유소에서 일하던 힐러리의 옛 남자친구를 만나게 되었고,

 

주유를 마치고 출발한 후,

빌이 “당신이 저 남자와 결혼했으면, 지금 주유소 사장 부인이 돼 있겠지?”라고 묻자

힐러리가 “아니요. 바로 저 남자가 미국 대통령이 되어 있을 거에요” 라고 말해

힐러리의 당당함과 자존감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힐러리 클린턴 대선후보

빌 클린턴이 1993년부터 2001년까지 8년간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때에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부인인 엘리너 루스벨트 여사 이후

가장 영향력있는 퍼스트레이디라는 평가를 받으며 왕성한 활동을 했고,

 

일반적으로 영부인의 집무실은 백악관 동관(East Wing)에 위치하지만,

적극적으로 정책에 관여하며 백악관 서관(West Wing)에 자기 사무실을 가진

최초의 대통령 영부인이 되기도 했으며,

 

힐러리가 국가보건개혁 테스크포스를 이끌며 완성한 계획은

힐러리케어(Hillarycare)로 불리며, 오바마케어의 모태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힐러리는 이 같은 내조활동으로 퍼스트레이디로서 눈길을 끌기도 했지만,

여전히 정치적으로는 빌 클린턴 대통령의 후광에 가려져 있었는데,

 

빌 클린턴의 르윈스키 스캔들로 탄핵 파문이 닥치자

인생의 힘든 시기에 성서에서 나오는 구절을 되새기며 힘을 얻었다며,

돌아온 탕아 부분을 인용하며 자신의 심정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빌 클린턴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스캔들을 잘 다루며

퍼스트레이디에 대한 지지도가 71%까지 오르기도 했고,

사람들에게 정치인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힐러리 클린턴 후보는 민주당의 권유를 받아들여

2001년부터 2009년까지 뉴욕주에서 미국 연방 상원의원을 지내기도 했는데,

이는 뉴욕주에서 당선된 최초의 여성 상원의원이기도 하며,

 

상원의원으로 활동하며 당파를 초월해 의원들과 교류하고

전국의 유권자들을 만나며 본격적인 정치 행보를 이어가기 시작했고,

 

2007년 1월, 대통령 선거에 나설 것이라고 선언하며

선거운동 초반만 해도 당선이 기정사실화된 것으로 보였지만,

 

2008년 1월, 민주당의 아이오와주 첫 경선에서

현재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 후보에게 충격의 패배를 당했고,

 

선거 기간 동안 냉철함 대신 눈물을 보이기도 했으며,

그해 6월, 선거운동을 중단하고 오바마 후보 지지 선언을 했습니다.

 

 

성공 가도를 달려온 힐러리 후보

당시 정치 신인으로 평가받던 오바마 후보에게 패한 상황이기에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는 평가를 듣기도 했지만,

 

2009년 오바마 1기 행정부 출범 이후 제67대 국무장관을 맡으며

행정 경력을 쌓고, 차기 대선 주자로서의 내공을 쌓아 나갔고,

 

2013년 2월 국무장관에서 물러난 후 잠행하다

2015년 4월 12일, 대권 재도전을 선언했고,

 

이번 선거운동 과정에서도 자칭 사회주의자 버니 샌더스 후보의

아웃사이더 열풍을 만나 예기치 못한 위기 상황을 만나기도 했지만,

그동안 축적해온 저력을 발판 삼아 승리를 거머쥐며

미국 역사상 최초로 주요 정당의 여성 대선후보로 선출되었습니다.

 

 

힐러리 클린턴 후보

미국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선 후보와의

여성 대 아웃사이더라는 세기의 대결을 앞두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힐러리 후보의 승리가 예상되고 있지만,

뇌진탕 증세로 병원에 입원하며 나타난 건강 이상설을 비롯해

 

엘리트 이미지와 고액 강연료 논란,

국무장관 시절 개인 이메일 계정을 사용했다는 이른바 이메일 스캔들 등으로

지지율이 주춤하는 등 위기 상황이 이어지고 있기도 한데,

 

힐러리 후보는 퍼스트레이디, 연방 상원의원, 국무장관이라는 이력에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라는 이력을 추가하며

미국 역사의 새로운 한 페이지를 장식할 수 있을지

앞으로 관심있게 지켜볼 대목인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