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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이슈 이야기/정치 이야기

유승민 새누리당 신임 원내대표 프로필은?

 

20150202 / 유승민 새누리당 신임 원내대표 프로필은?

 

2015년 2월 2일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의원총회 결과,

전체 투표 참석 의원 149명 중 65명은 이주영 원내대표, 홍문종 정책위의장 조를

 

84명은 유승민 원내대표, 원유철 정책위의장 조를 선택해

유승민, 원유철 의원이 새누리당의 신임 원내대표, 정책위의장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새누리당 신임 원내대표로 선출된 유승민 의원1958년 대구 출생으로

13대, 14대 국회의원을 지낸 유수호 전 의원의 아들로 알려지고 있으며,

 

대구 삼덕초등학교, 대륜중학교, 경북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고,

대학 재학 중이던 1979년~1981년까지 육군 수도방위사령부에서 복무해

병장으로 만기전역한 이력이 있으며,

 

미국 위스콘신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 박사 학위를 수료해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과 함께 위스콘신 학파로 분류되고 있고

귀국 후, 한국개발연구원에서 경제팀 연구위원, 선임연구위원 등으로 활동했습니다.

 

 

유승민 의원은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 시절인 2000년 2월에

한나라당 씽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장에 영입되어 정계에 입문해

이회창 총재를 보좌하며, 이른바 경제 선생님으로 활동하기도 했고,

 

2002년에 치러진 제15대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가 패배한 뒤 정치적 공백기를 가진 뒤,

2004년 치러진 17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해 초선의원이 된 후,

 

재보궐선거가 치러지던 2005년에

비례대표를 사퇴하고 대구 동구을 지역구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어

다시 17대 국회의원이 되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고,

 

2008년 18대 총선에서 대구 동구을 지역구에 출마해 재선에 성공하고,

2012년 치러진 19대 총선에서 대구 동구을 지역구에서

67.4%의 득표율을 얻으며 당선되어 3선 의원이 되었으며,

 

정계에 입문하기 전 이력을 살려 국회에서 정무위원회와 재경위원회에서 주로 활동해 왔지만,

18대 국회에서는 지역구 현안인 대구 K-2 공군기지 이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방위원회로 자리를 옮겨 19대 국회 전반기 국방위원회 위원장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유승민 새누리당 신임 원내대표

2005년 한나라당을 박근혜 대표가 이끌던 시절,

대표 비서실장을 맡으며 박근혜 대통령과 인연을 맺기 시작했으며,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정책메시지 총괄단장을 맡아 활동하며 선거 전략을 수립하기도 했고,

 

2008년 치러진 제17대 대선에서 이명박 정부가 수립된 후에는 활동을 자제하다가

2011년 제18대 국회에서 친박계를 대표하는 의원으로 전당대회에 출마해

2위로 한나라당 최고위원에 올라 원조 친박의 부활로도 평가받기도 했으며,

 

홍준표 대표가 한나라당을 이끌던 시기인 2011년 10월 26일 치러진 재보궐선거 결과,

오세훈 서울시장의 사퇴로 공석이 된 서울시장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패배하고,

최구식 의원 보좌관의 선관위 디도스 공격 등 대형 악재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홍준표 체제가 위기 수습을 위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2012년 12월 7일, 원희룡 최고위원과 함께 전격적인 사퇴를 표명했고,

 

이후, 새누리당 최고위원들의 동반 사퇴가 이어지며 홍준표 대표가 물러나게 되었고,

이는 결과적으로 박근혜 의원이 정치권의 예상보다 일찍 한나라당의 전면에 나서게 되고,

한나라당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다만, 유승민 의원은 박근혜 의원이 비상대책위원장으로서

비상대책위원회를 이끌던 시기에 한나라당의 당명을 새누리당을 바꾸려 할 때,

 

새누리당이라는 당명에는 보수적 가치와 정체성이 담겨 있지 않으며,

당명이 가벼워 비장한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 어려워진다고 주장하며

공개적으로 반발해 화제가 되기도 했고,

 

2012년 2월 2일,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에서 표결로 당명 변경을 의결했지만,

유승민 의원은 대단히 중요한 당명 변경을 비대위에서만 의결하는 것은 맞지 않다며

의원 총회 소집 후 표결한 후, 전국위원회에서 의결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 이른바, 소신발언을 이어가며 갈등이 이어졌고,

 

 

2014년 7월 14일 치러진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김무성 대표가 선출된 후,

유승민 의원이 신임 사무총장으로 거론되고 삼고초려 대상으로 손꼽히자

친박계와 멀어진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고,

 

2014년 10월에는 미국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에

대한민국이 중국에 경도되었다는 주장은 한미 동맹의 성격을 잘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는 말이

포함되었다는 내용이 언론을 통해 사전에 배포되었다가 실제 연설에서는 생략되자,

 

이러한 실수는 장기적 전략 부재 때문이라고 지적하며 외교안보팀이 무능하다고 평가하고,

청와대 얼라들(청와대 아이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논란이 일기도 했고,

 

2015년 1월 공개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수첩 메모에 적힌 이니셜 중

K는 김무성 의원을, Y는 유승민 의원을 뜻하는 것으로 알려지며

의도치 않게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습니다.

 

 

유승민 새누리당 신임 원내대표

이회창, 박근혜 등 새누리당 대선후보의 핵심 참모로 일해 왔고 논리가 명쾌해

새누리당 내에서 경제통, 전략통, 지략가, 브레인으로 손꼽히고 있으나,

다소 직설적인 성격으로 호불호가 분명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최근에는 원내대표 후보로 나서면서

지난 2년간 대통령도 잘하지 못했고, 당도 잘하지 못했다며,

지난 2년에 대한 철저한 반성을 바탕으로 당이 주도해 과감하게 변할 수밖에 없고,

 

새누리당 당헌 8조가 정한 당과 대통령의 관계에 가장 충실한 원내대표가 되겠다며

대통령이 당의 정강 정책을 국정에 충실히 반영하고,

당은 대통령을 뒷받침해 동반 책임을 지겠다고 밝혔고,

 

외교, 안보 분야에서는 보수적인 성향으로 평가되지만,

경제, 복지 정책에서는 다소 개혁적인 성향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

정책 추진 과정에서 당-정-청 관계의 일대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며,

 

 

유승민 신임 원내대표가 후보로 나선 후 가진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평시라면 부드러운 리더십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전시라고 진단하며,

위기 상황을 돌파하는 변화의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했고,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이며, 여기에 집착하지 말고,

최종 목표를 중 부담, 중 복지에 맞추고 증세 청사진을 모색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고,

 

이는, 증세보다는 지하경제 양성화와 경제활성화를 통한 세수 확보를 우선해

증세 없는 복지를 이뤄낸다는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의 주장과 다소 차이가 있어

정책 추진 과정에서 다소 논란이 될 전망입니다.

 

 

유승민 새누리당 신임 원내대표

친박이라는 말이 처음으로 사용될 때부터 그 자리에 있었고,

영원한 친박이며,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도 인간적 신의를 지킬 것이고,

 

박근혜 대통령의 성공과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누구보다 바라며,

대통령과 정부가 성공해야 공동운명체인 새누리당도 성공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지만,

 

유승민 의원의 새누리당 원내대표 선출은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지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변화해야 한다는 입장이 의원들 사이에서 공감대를 얻은 결과이며,

이는 사실상 비박의원들이 당권을 접수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기에

 

이른바, 비박계 혹은 탈박계로 평가되는 김무성 – 유승민 체제는

박근혜 대통령의 조기 레임덕을 가져올 것으로도 분석되고 있는데,

 

유승민 원내대표는 앞으로 어떤 정책들로 새누리당을 이끌며 당-정-청 관계를 재정립하게 될지,

이러한 변화는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과 레임덕을 가속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지

박근혜 대통령이 지지율을 회복해 새로운 정책과 개혁을 수행하는 원동력이 될지에 대해서

앞으로 관심있게 지켜볼 대목인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