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신임 당대표 프로필은?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신임 당대표 프로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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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08 /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신임 당대표 프로필은?

 

2015년 2월 8일 일요일, 새정치민주연합은 당 대표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를 열고,

투표 합산 결과, 문재인 45.30%, 박지원 41.78%, 이인영 12.92%를 기록해

문재인 의원이 새정치민주연합의 신임 당대표로 선출되었다고 밝혔습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신임 당대표는 1953년 경남 거제도 출생으로

부산 남향초등학교, 경남중학교, 부산 경남고등학교를 거쳐 경희대 법학과를 졸업했고,

 

경희대학교 재학 시절에는 학생운동을 하다

1975년에는 군사정권 반대시위로 서대문 구치소에 수감되고,

 

석방 후 곧바로 입영 영장을 받고 입대해

1978년에 특전사령부 제1공수 특전여단에서 육군 병장으로 만기 제대한 이력이 있으며,

 

1980년 제22회 사법시험에서 차석으로 합격했다는 소식은

계엄령 위반 등으로 구속되어 있던 유치장에서 전해 들었다고 하며,

 

사법연수원 제12기로 수료하며 판사를 지망했지만,

시위 전력 때문에 임용되지 않아 공직 경험 없이 변호사 생활을 시작하려던 중

 

사법고시 동기의 소개로 만난 노무현 변호사와 함께

1982년부터 법무법인 합동법률사무소를 개업하고 변호사로 활동해 왔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신임 당대표는 이후, 인권변호사로 활동하고,

1987년에는 부산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를 만들어

상임집행위원장을 맡아 활동하기도 했으며,

 

1988년 치러진 제13대 총선에서 노무현 변호사가 김영삼 총재의 영입 제안을 받고

부산 동구를 지역구로 당선되어 정계에 진출하고 국회에 입성한 후에는

법무법인 부산을 설립해 대표 변호사로 활동하며 법조인의 길을 걸어왔지만,

 

2002년 치러진 제16대 대선에서 동지적 관계였던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부산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아 활동하며 정계에 발을 들이기 시작했고,

 

노무현 후보가 2002년 제 16대 대선 부산 선대본부 출범식에서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라고 소개한 것이 전해지며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신임 당대표

제16대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당선된 후

청와대에서 민정수석비서관, 시민사회수석비서관, 대통령 비서실장 등을 역임하고

 

노무현 대통령을 계속해서 지근거리에서 보좌해

수석들 중 왕 혹은 으뜸이라는 뜻으로 왕수석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고,

 

2004년 치러진 17대 총선을 앞두고

열린우리당에서 총선 징발론이 제기되며 출마 압박을 받아오다

출마를 거부하고 민정수석에서 사퇴한 후 히말라야로 트래킹 여행길에 올랐다가

 

선거개입 논란으로 노무현 대통령 탄핵사태가 발생하자 귀국하고

탄핵심판 간사 변호인으로서 탄핵소추를 변론하기도 해

노무현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신임 당대표

2007년 3월부터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해에 마지막 비서실장으로 활동하며

2007년 10월 이뤄진 남북 정상회담 준비위원장 직을 수행하기도 했고,

 

2007년 12월 치러진 제17대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대통령 후보가 당선된 후,

정치적 활동을 하지 않고 부산에서 변호사로 활동해 왔으며,

 

2009년에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실질적인 상주 역할을 수행하며

국민장위원회 상임집행위원장을 맡기도 했으며,

 

2010년 재단법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으로 지내면서도

정치권의 입문 제의를 거부하고 정계와 거리를 둬 왔지만,

 

 

2012년 제18대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의 대선 후보 부재론이 확산되자

2011년 6월 자서전인 문재인의 운명이라는 책을 발간하며

본격적인 정치 행보를 하기 시작했고,

 

대선을 앞두고 진행된 2012년 치러진 제19대 총선에서

민주당의 약세 지역으로 손꼽히던 부산, 경남 지역에서

이른바, 민주당의 낙동강벨트 구축을 선거 전략으로 삼아 활동을 시작하며,

 

문재인 후보도 부산 사상구를 지역구로 출마해 현실정치에 뛰어들어

새누리당 손수조 후보와의 대결에서 55.0%의 득표율로 승리해

초선 의원으로 당선되며 본격적으로 정계에 입문했으며,

 

당시, 문재인 의원이 PK지역에서 선거 운동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PK지역에서 3석을 얻는데 그쳤기에 확장성이 약하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지만,

 

민주당이 부산에서 40%를 웃도는 득표율을 보여

대선 경쟁력을 인정받았다는 상반된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신임 당대표는 이 후, 2012년 6월 17일 독립문에서

부인과 아들이 함께한 자리에서 대선 출마 선언을 하며 대선 행보를 이어갔고,

2012년 8월에는 정책 비전을 담은 사람이 먼저다를 출간해 화제가 되기도 했으며,

 

2012년 치러진 민주당의 제19대 대선 후보 선출 순회 경선에서는

단 한번도 1위를 놓치지 않으며 승리해 결선투표 없이 대선 후보로 선출되었고,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로 나서 무소속 안철수 후보와 선거 연대를 한 후,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와의 대결에서 48.0%의 득표율을 기록해

51.6%의 득표율을 기록한 박근혜 대통령에게 패배한 후,

대선 결과에 대한 승복 연설을 하기도 했습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신임 당대표

이 후, 대선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의견에 따라

공식적인 활동을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2013년 6월,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해 북방한계선 NLL 포기 취지 발언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대통령기록물 관리법 절차에 따라 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할 것을 제안하며

적극적인 행보로 화제의 중심에 서기 시작했고,

 

이후, 2014년 8월,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의 단식 중단 요청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광화문에서 동조 단식을 계속해

본격적인 정치 행보를 시작한 것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으며,

 

2014년 12월 29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기는 정당을 슬로건으로 당대표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한 바 있습니다.

 

 

문재인 의원은 새정치민주연합의 신임 당대표로 선출되는 과정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이 다시 일어서야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며,

 

당 대표가 되면 많은 분의 얘기를 들으면서 희망의 연대를 펼쳐 당을 하나로 화합시키고

공천 혁신을 분명히 이뤄내고 40%까지 지지도를 끌어올려

이기는 당으로 만들겠다고 밝히며 지지를 호소했지만,

 

전당대회가 진행되며 이른바, 친노와 비노 진영의 대립이 격화되고,

전당대회를 앞둔 시점에 여론조사 반영 방식이 바뀌는 경선룰 변경이 이뤄져

박지원 의원 등 의 집중 공격 대상이 되고, 분당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는데,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신임 당대표는

전당대회에서 나타난 갈등들을 조기에 봉합할 수 있을지,

 

정당 내부의 의견 뿐만 아니라 새누리당과 일반인들의 의견도 경청하고 수렴해

상식이 통하는 정치, 상생의 정치로 정치권의 발전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

앞으로 관심있게 지켜볼 대목인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