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깍발이 판사 조무제 전 대법관 프로필딸깍발이 판사 조무제 전 대법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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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10 / 딸깍발이 판사 조무제 전 대법관 프로필은?

 

사의를 표명한 정홍원 국무총리 후임으로

충북 출신의 문창극 전 중앙일보 대기자가 내정되긴 했지만,

언론에서는 조무제 전 대법관 등 이 유력 후보로 오르내리기도 했는데,

 

PK출신, 법관이라는 조건 혹은 본인의 고사로 국무총리 후보자가 되지 않았겠지만,

조무제 전 대법관은 우리나라에 드문 청념한 인물의 표상이라는 생각이 들기에

자세한 프로필과 사례들을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조무제 전 대법관은 1941년 경남 진주 출생으로

진주사범학교와 부산 동아대학교 법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1967년에는 서울대학교 사법대학교 법학 석사 학위를,

1986년에는 동아대학교 대학원 법학 박사 학위를 수료했고,

 

1965년 제4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1967년부터 공군 군법무관으로서 공군 중위로 병역 의무를 마쳤으며,

장남과 차남도 육군 병장으로 만기 전역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조무제 전 대법관은 1970년 부산지법 판사로 임관한 후,

1970년부터 28년간 부산, 대구, 창원 등 영남권에서 판사 생활을 한 법관으로,

 

부산고법 부장판사로 있던 1993년에 처음으로 이뤄진 고위 공직자 재산공개 당시,

25평짜리 아파트 한 채와 부인 명의의 예금 1075만원 등 총 6434만원을 신고해

 

재산 공개 대상 고위 법관 103명 중 꼴찌를 기록하며,

신이 없어 맑은 날에도 나막신을 신는 가난한 선비를 뜻하는 딸깍발이 판사로 알려졌고,

 

비 서울대 출신과 영남지역에서만 법관을 지냈다는 조건에도 불구하고,

공정한 재판, 존경받는 향판이라는 자격을 인정받아 1998년 임기 6년의 대법관에 지명되었습니다.

 

 

딸깍발이 판사 조무제 전 대법관

대법관으로 지명되었을 때 신고한 재산은 7200만원에 불과했고,

 

대법관 취임 후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생활하면서,

전세 보증금 2000만원짜리 원룸 오피스텔에 거주해 화제가 되기도 했고,

 

나라돈을 허비할 수 없다며, 배정된 비서관을 두지 않고 혼자 업무를 처리하고,

관용차도 업무 외엔 사용하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퇴근을 해 청빈 대법관으로 불렸고,

대법관 퇴임 때도 재산은 아파트 한 채를 포함해 2억원 가량이었으며,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대법관 출신들이 대법관 퇴임 후,

유명 로펌행을 택해 전관예우를 받으며 부를 축적하던 것과는 달리,

 

지난 2004년에 첫 여성 대법관인 김영란 대법관에게 자리를 물려주며,

법조인 생활 34년만에 대법관에서 퇴임한 후에는,

 

고향으로 돌아와 모교인 동아대학교 석좌교수로 민사소송법을 연구하고 강단에 서

법조계 인재 양성과 후학 양성을 위해 노력했고,

 

이 과정에서, 후배 학생들을 돕기 위해 1993년 100만원을 시작으로,

20여년간 월급의 일부를 꾸준히 쪼개어 동아대학교 발전기금으로 냈고,

발전기금 총액이 8천여만원을 넘는 것으로 알려지며 눈길을 끌기도 했습니다.

 

 

조무제 전 대법관은 과거에는 관행으로 여겨졌던 전별금을 받지 않았고,

1994년 창원지법원장으로 승진할 때에는 주변의 압박 등(!)으로 전별금을 받게 되자,

 

전별금으로 책을 사서 익명으로 부산고법도서관에 기부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기도 해

청빈한 삶의 자세를 유지하는 법조인으로 알려지기도 했고,

 

2009년부터는 부산지방법원 조정센터에서 상임조정위원으로 참여하며,

하는 일에 비해 수당이 너무 과하다는 뜻을 밝히며 자진해서 수당 삭감을 요청

평소의 절반 수준의 수당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해

 

법조인 출신 고위 공직자들의 전관예우 문제가 논란이 되는 시점에서

남다른 선행으로 인해, 우리 사회의 귀감이 되는 인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한때 야채가게 아저씨, 청백리로 불리던 김능환 전 대법관도

가정생활과 경제적인 문제 등으로 로펌으로 발길을 돌렸고,

 

국민검사로 각광받던 안대희 전 대법관은

총리 지명 후, 인사청문회가 시작되기도 전에,

 

변호사 개업 5개월만에 16억원을 벌었다는 고액수임료 논란과

전관예우로 인한 법피아 논란의 중심에 서며 사퇴하기도 해 아쉬움을 남겼는데,

 

 

조무제 전 대법관은 2004년 8월 17일 가진 대법관 퇴임식 자리에서,

이해관계에 얽힌 주변으로부터 초연하려면 고독이 따르게 마련이지만,

법관은 고독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달갑지 않은 어둠 같지만, 고독에 익숙해지면,

미처 볼 수 없던 은밀한 사물의 존재까지 알아보는 능력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고,

 

보편성을 잃은 주장이라면,

눈앞에 다가오는 여론이라 할지라도 그로부터 초연할 수 있어야 한다

깊이 있는 사색의 중요성과 흔들리지 않는 자세, 보편적인 상식을 강조하기도 했고,

 

지금도 스스로가 퇴임식 때 한 말을 지키며,

흔들리지 않고, 고독함 속에서 청념한 자세를 이어가고 있는데,

 

조무제 전 대법관은 계속해서 초심을 이어가며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인물로 기억되고, 역사에 기록될 수 있을지,

앞으로도 관심있게 지켜볼 대목인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