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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이슈 이야기

정진석 추기경 프로필은?

 

20210427 / 정진석 추기경 프로필은?

 

2021427, 우리나라 두 번째 추기경님

정진석 추기경님께서 노환으로 선종하셨습니다.

 

정진석 추기경 (세례명 니콜라오)

1931년 12월 7일 (음력) 서울 출생으로 독실한 카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때부터 명동성당 새벽 미사의 복사 (신부 보좌역)를 맡을 만큼

신앙심이 깊었다고 하며,

 

서울중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화학공학과를 다니던 중

1950년 발발한 6·25 전쟁 당시 미군 통역으로 일하며

전쟁의 참상을 경험한 후 사제의 길로 들어서

 

카톨릭대학교 신학부를 마치고 돌아와 1961318,

서울 명동성당에서 노기남 대주교의 주례로 사제서품을 받은 것으로 전해집니다.

 

 

정진석 추기경은 명동성당에서 세례성사, 고해성사, 첫영성체, 견진성사,

사제 서품도 받을 만큼 명동성당과 인연이 깊은데,

 

당시 외아들은 신학교 입학이 허용되지 않았지만,

정진석 추기경의 뜻을 잘 헤아려 어머니 이복순 여사께서

대주교님을 찾아가 입학 허락을 받은 일화도 있다고 합니다.

 

정진석 추기경님과 어머니 이복순 여사 / 출처 : 평화방송

 

정진석 추기경은 이후 로마로 유학해 우르바노대학원 교회법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1970년 만 39세의 나이로 청주교구장에 임명되어

당시 우리나라 천주교 역사의 최연소 주교로 임명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정진석 추기경은 청주교구장 시절에

충북 음성 꽃동네 설립을 적극 후원한 것으로 전해지며

이후 28년간 청주교구장을 지낸 후

1998년 김수환 추기경의 후임으로 서울대교구장에 임명되셨습니다.

 

2006년에는 김수환 추기경에 이어

우리나라 두 번째로 추기경에 임명되었으며

2012615일까지 서울대교구장을 지내셨습니다.

 

정진석 추기경은 서울대교구장으로 있으면서

생명 존엄성 수호 운동에 힘을 쏟으며

2005년에는 생명의 신비상을 제정한 바 있으며

 

특히, 2006년에는 정진석 추기경을 비롯하여 천주교 서울대교구 600여명의 사제가

사후 장기기증 서약을 한 것으로 전해지며, 이에 따라 추기경님의 선종으로

각막은 이식되는 것으로 확정되었습니다.

 

 

정진석 추기경2018년에는

연명 의료 계획서에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서명을 한 바 있으며

 

서울대학교 입학 68년만에 명예졸업장을 받기도 했는데,

이 때 대리 수여한 관계자는 추기경님의 축사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축사의 내용은 희망에 대한 강조

나눔과 섬김의 삶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아무리 힘든 고난과 역경이 닥치더라도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됩니다."

희망은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함으로써 피어납니다"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며,

자신을 가치 있는 존재로 만들어 가야 합니다"

 

"가치 있는 존재는 부귀와 명성을 가진 자가 아니라

나눔과 섬김의 삶을 실천하는 자입니다."

 

행복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누리는 것입니다.”

 

 

또한, 최근에는 서울대교구 대변인인 허영엽 신부님과의 만남에서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행복하게 사는 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

라는 말씀을 전했다고 합니다.

 

평화와 안식을 받으며 영면하시길 바랍니다.

모두들 행복하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