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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이슈 이야기

결선투표제 정의, 채택국가와 과거 사례?

 

20120903 / 결선투표제의 정의, 채택국가와 과거 사례는?

 

결선투표제도

절대다수제의 원칙에 조금이라도 충실하게 따르는 것을 목적으로

일정한 조건하에서 재투표를 실시하는 것을 말합니다.

 

1차 투표 후, 개표결과 후보자의 누구도 과반 득표수를 얻지 못한 경우,

상위 2명의 후보자 혹은 득표수가 많은 상위 후보자들을 통해서

비교다수의 방법으로 진행되는 투표로,

 

유권자의 의사를 보다 정확하게 반영시킬 수 있고,

과반 득표를 통해서 사표를 줄이고, 대표성을 명확하게 가지게 된다는 장점

 

두번씩이나 투표를 해야한다는 번거로움과

결선투표 전에 조정 등을 하여 전략적인 행동을 취할 가능성도 있는는 단점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현실에서는, 대표적으로 프랑스가 결선투표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통상적으로 1차투표가 진행된 후, 일주일 가량의 시간이 지난 주말에 실시되며,

 

대선에서는 1차투표에서 1ㆍ2위 후보를 대상으로 결선투표를 진행하며,

국회의원 선거의 경우는 12.5%이상의 득표율을 기록한 경우 결선투표제에 나갈 수 있어서,

결선투표가 3~4명에 이르는 경우도 간간히 발생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단순 다수제를 채택하고 있어서,

최장집 교수, 노회찬 의원 등 일부 진보진영 인사들을 중심으로

대선 결선투표제 채택을 주장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과거 우리나라에서의 결선투표 사례를 보면,

1971년 제 7대 대선을 앞두고 1970년대 신민당 대선 예비후보 경선에서

진행된 사례가 대표적으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당시 DJ, YS, 이철승 등과 40대 기수론을 내세우고 경선이 진행되었고,

신민당의 대선 예비후보로 유진산이 선출될 것이 유력시되었지만,

경선을 포기하는 대신 후보자 지명권을 달라는 요구를 해서 YS를 후보로 추대하게 됩니다.

 

그리고 진행된 1970년 9월 전당대회에서,

1차 투표결과, YS 421표, DJ 382표, 무효 82표로

YS는 최고 득표를 얻지만, 과반 미달2차 결선 투표를 진행하게되고,

 

당시 이철승이 유진산의 지명에 따른다는 약속을 파기하고,

2차 결선투표에서는 DJ를 지지하며, 투표 결과 YS 410표, DJ 485표로

2차 결선투표에서는 DJ가 YS를 이기고 역전을 한 사례가 있습니다.

 

신민당 내에서는 이에 반발해 1971년 1월 6일부로,

구 민주당 출신인 윤보선, 장준하, 박기출 등이 국민당을 탈당해 나갔지만,

 

YS는 당시 이를 거부하고 "DJ의 승리는 우리들의 승리이며, 곧 나의 승리입니다.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DJ를 앞세우고 전국을 누빌 것을 약속합니다."라고 선언하며

유세에 동참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