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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이슈 이야기/경제 용어정리

김우중 추징법, 김우중 대우 회장 프로필

 

20130916 / 경제용어 / 김우중 추징법이란?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프로필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9월 16일 오전,

아시아나 항공편으로 인천공항에 도착했다고 연합뉴스가 보도했습니다.

 

전두환 추징법에 이어 공무원 외에 일반인에 대해서도 추징금을 집행할 수 있도록 하고,

가족들에 대한 계좌추적과 대규모 압수수색, 소환조사 등이 가능해지도록 하는,

이른바, 김우중 추징법입법 예고된 상황이기에 김우중 회장의 귀국은 눈길을 끄는데,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지난 2002년 대우그룹에 대한 분식회계를 벌인 혐의로

대우그룹 임원들과 함께 22조 300억원의 추징금을 선고받고 현재까지 840억원만 납부해

 

22조 9460억원의 추징금이 미납되어 있는 상황이고,

이 중, 김우중 회장이 납부해야 할 금액은 17조 9천억원에 달해 논란인 상황입니다.

 

 

물론,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측

전체 추징금 가운데 대부분이 해외 현지법인의 미신고 차입금이고,

 

이는 개인적 이득을 취하거나 자금을 도피시킨 것이 아니라,

기업 경영과정에서 외국환 관리법을 위반해 부과된 징벌적 추징금으로

전직 대통령들의 추징금 미납과는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개인 추징금이 17조원에 달해 추징금 최고 미납자로 알려진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프로필을 살펴보면,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1936년 12월 19일 대구 출생으로

경기중학교와 경기고등학교를 거쳐 1960년 연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고,

 

1960년부터 친척이 운영하던 무역회사인 한성실업에서 바이어로 근무하다가 1967년 독립해

31세의 나이에 자본금 500만원과 5명의 직원으로 대우실업을 창업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대우실업 창업 첫해에,

싱가포르에 트리코트 원단과 와이셔츠 제품을 팔아 58만달러 규모의 수출실적을 거두는 등

유창한 영어실력을 바탕으로 동남아시아와 미국 시장에서 성공을 거둔 것으로 전해지며,

 

해외시장에 대한 정보취득과 선제대응을 위해 국내기업 최초로 해외지사를 설립하기도 했고,

1970년대에는 적극적인 M&A를 통해 대우건설, 대우증권, 대우전자, 대우조선 등을 거느렸고,

1989년에 출판한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자서전은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습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1993년부터는 폴란드, 헝가리, 우즈베키스탄 등

동유럽 지역에서의 민주화, 시장 개방 바람을 확인하고 이른바, 세계경영을 선포하며,

세계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며 연간 해외 체류기간이 280일을 넘기기도 했고,

 

이러한 열정으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베트남에서는 존경받는 한국인의 대표주자로 손꼽히기도 했고,

1999년에는 20세기 한국을 빛낸 30대 기업인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세계 경영의 대표 주자로 불리기도 하지만,

이와 반대로 부정적인 평가를 하는 시각도 만만치 않은데,

 

대우가 전직 고위관료와 금융인들을 다수 영입한 까닭에

정부지원과 금융조달을 이끌어내 정경유착을 했다는 의혹(!)을 낳기도 했고,

 

1998년 발생한 IMF 외환위기의 여파로 부채비율이 400%이상으로 급등해 부실화되자,

세계경영이란 미명하에 방만한 경영을 해 부채 비율을 높여

IMF 외환위기로 인한 충격으로 국민 경제 생활을 어렵게 했다는 비판이 대표적입니다.

 

 

대우그룹의 부실화는 1998년 10월 29일 일본 노무라증권 서울지점에서 나온

대우그룹에 비상벨이 울리고 있다(Alarm bells is ringing for the Daewoo Group) 보고서가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지고,

 

이 보고서가 발표된 후 대우그룹에 대한 금융권의 자금 회수가 시작되는 한편,

회사채 발행 계획이 취소되며 김우중 회장은 경영 압박을 받기 시작했고,

 

1999년 11월 1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체류중이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대우그룹에 대한 구조조정과 워크아웃을 적극 추진키로 하면서

경영포기 및 회장단 사퇴를 선언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대우그룹은 이 후, 1999년 12월 실사가 진행된 결과,

총부채는 최대 89조원, 자산은 59조원으로 추산되었고,

 

대우건설과 대우인터내셔널 등 굿 펌퍼니(Good Company)와

쓰레기 채권을 떠안은 배드 컴퍼니(Bad Company)로 쪼개져

워크아웃을 받으며 재기를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는데,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대우그룹의 정상화를 뒤로하고 1999년 10월에 국외로 떠났고,

이 후, 국내에서는 김우중 회장에 대한 소식을 들을 수 없어

미스테리한 김우중 회장의 국외 생활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도 했습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해외로 떠난 후,

41조원 가량의 분식회계 사실이 발표되며 부실 기업인으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2005년 입국해 2006년 11월 3일 징역 8년 6개월과 추징금을 선고받고 복역한 뒤,

지난 2007년 12월 31일 특별사면으로 출소하기도 했습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지난 2013년 4월에 14년간의 은둔생활을 깨고

종합편성채널인 TV조선과 인터뷰를 진행해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베트남 현지에 머물면서 인생의 마지막 흔적을 남기고 싶다고 말하며

전직 대우맨 모임인 대우세계경영연구회가 주관하는 글로벌 YBM 프로그램에 참여

 

청년들에게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하며 청년 해외 창업을 돕는 모습을 보여주며

김우중 사관학교(!)의 교장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당시 인터뷰에서

직원들과 식구들에게 미안하고, 언젠가 원망을 풀어줘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고,

 

대우그룹 해체에 대해서는 내가 잘못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나중에 기회가 되면 말하겠다며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함구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에 대해서는

불굴의 도전정신을 가진 신화적인 인물이라는 긍정적인 평가 한편으로,

 

수출드라이브 정책과 정재계 인맥을 활용해 경영하다 무리하게 외부차입을 지속해

결국, 이카루스처럼 추락한 경영자라는 엇갈린 평가가 나오고 있고,

그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진행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이번 귀국은 추석을 맞이한 귀국일 수 도 있지만,

최근 들어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김우중법 혹은 김우중 추징법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힐 수 도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는데,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김우중 추징법에 대해서 앞으로 어떤 입장을 표명하게 될지,

계속해서 관심있게 지켜볼 대목인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