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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이슈 이야기

19대국회 국회의장, 강창희는 누구?

 

20120602 / 19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으로 선출된 강창희는 누구?

 

 

새누리당은 지난 1일 의원총회를 열고

대전 중구가 지역구인 6선의 친박계 강창희를 2년 임기의 19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으로 선출했습니다.

총 136표 가운데 88표를 얻어 48표를 얻은 정의화를 가뿐하게 이긴 것입니다.

 

출마시

"국회의장으로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헌법적 가치를 꼭 지키겠다는 약속을 실천하겠다" 고 말했고,

"여당에는 한번 듣고, 야당에는 두번 듣고, 국민에게는 세번 물어 각계의 지혜를 모아 이끌어 가겠다"고

소통에 방점을 둔 포부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5일로 예정된 개원 본회의에서 국회의장으로 선출되면,

헌정 사상 첫 충청권 출신의 국회의장이 된다고 하는데, 과연 강창희는 어떤 인물일까요?

 

 

강창희1946년 생으로 올해 나이는 66세입니다.

육사25기로 1981년 중령으로 예편한뒤, 민정당 조직국장을 맡으며 정계에 진출했으며,

성격은 JP가 "스트레이트적 인간"이라고 평한 것처럼, 직접적이고 괄괄한 성격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초선으로 국회에 진출한 것은

1983년에 전국구 예비후보를 승계해서 37세의 나이에 처음으로 11대 국회의원이 되었고,

1985년 총선에서 대전 중구에 출마해 재선에 성공했지만, 88년에는 JP바람에 낙선한 바 있습니다.

 

그 뒤, 3당 합당으로 지역구를 내놓게 되자 92년에는 무소속으로 14대 국회의원으로 3선에 성공한 바 있으며,

95년엔 자민련에 입당해 DJP 공동정부가 출범한 후 15, 16대 국회의원이 되었고,

초대 과학기술부 장관을 역임했고, 이후 99년 JP가 내각제 개헌을 연기하려하자 반 JP노선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2000년 말 새천년민주당이 자민련의 교섭단체 등록을 돕기위해서

의원 3명을 자민련에 보내는 '의원 임대 사태'가 발생했을 때는

"정도가 아니다"라는 말로 끝까지 교섭단체 등록 서명을 거부해 자민련에서 제명된 바 있습니다.

 

 

이후 2004년, 한나라당으로 건너간 강창희는 박근혜가 비대위원장과 인연을 맺게된 것으로 알려지는데,

당시 박근혜가 탄핵사태 여풍속에서 한나라당 대표 출마를 망설이자

"이렇게 나라가 어려운 상황에서 아버님 같으면 어떤 판단을 했겠느냐. 나라를 위해 나서야한다"고

적극 출마를 권유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17대 총선에서는 낙선했지만, 박근혜의 지원을 받아 2006년 최고위원에 당선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고,

18대 총선에서도 낙선했지만, 19대 총선에서는 충청권에 분 새누리당 돌풍으로 6선에 성공했습니다.

 

 

2007년에는 박근혜 캠프의 고문을 지냈고, 최근에는 7인회의 멤버로 이름을 오르내리고 있고,

정계 입문 과정을 두고 민주통합당에서는 5공 인사라는 자격시비를 제기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과연 충청권 최초로 국회의장이 될지, 자격시비로 낙마하게될지는 오는 5일 최종 결정될 예정입니다.

 

[Update 21020605]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19대 국회 원구성 협상이 난항을 겪으며,

국회의장과 부의장을 뽑는 원포인트 개헌도 실시되지 않아, 결국 다소간 시일이 소요될 전망입니다.

 

[Update 20120702]

19대 국회 개원 첫날인 오늘,

국회는 19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으로 무기명 비밀투표를 통해

전체 283표 중 195표의 찬성(찬성률 68.9%)으로 강창희를 국회의장으로 선출했습니다.

 

또, 국회부의장으로는

새누리당 몫은 4선 이병석(경북 포항 북)이 283표 중 245표로

민주통합당 몫은 4선 박병석(대전 서구 갑)이 277표 중 271표를 얻어 전반기 국회부의장으로 확정되었습니다.